광주 고려인마을, 연해주 독립운동가 백규삼 공적 재조명

  • 입력 2026.10.2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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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고려인마을이 안중근 의사와 단지동맹을 맺고 연해주와 중국 동북지역에서 항일투쟁을 벌인 백규삼 선생(1873~1917)의 활동을 조명했다. 고려인마을은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함께 추진하는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 및 지원사업’의 34번째 인물로 백 선생을 선정했다고 27일 밝혔다.

함경북도 명천군 하고면 출신인 백 선생은 러시아어와 중국어에 능통해 연해주와 중국 동북지역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했다. 1908년 안중근 의사가 연해주에서 의병부대를 결성하자 지휘부에 참여했고, 같은 해 8월에는 의병 200여 명과 함께 함경북도 경원군 일대에서 일본군을 공격했다.

회령 영산 전투에서 패한 뒤 연해주로 돌아간 백 선생은 1909년 초 연추에서 안중근·김기룡 등과 단지동맹에 참여했다. 이위종 등이 만든 항일단체 동의회에서는 서기로 활동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이후에는 동지들과 안중근유족구제회를 조직해 성금을 모으고 구명운동을 펼쳤다. 블라디보스토크 자택에는 단지동맹 관련 문서와 혈서로 쓴 대한독립기 등을 보관한 것으로 전해진다.

백 선생은 훈춘·연추·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으고 일본영사관과 헌병대 습격을 계획하는 등 투쟁을 이어갔다. 1911년 권업회 설립에 참여했으며, 민족교육에도 힘을 보탰다. 1912년 훈춘 한인기독청년회 교육과장을 맡았고, 1915년 부회장, 1916년 회장으로 활동하며 한인 청년의 민족의식을 높이는 데 힘썼다. 이동휘·황병길 등과 협력해 독립군 양성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참여했다.

백 선생은 1917년 1월 7일 훈춘에서 폐병으로 숨졌다. 정부는 공적을 인정해 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지만,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로 분류돼 있다. 무장투쟁과 조직 활동, 민족교육을 함께 이어간 그의 행적은 연해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이 여러 방식의 연대와 지원으로 전개됐음을 보여준다. 고려인마을은 잊힌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을 발굴하고 알리는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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