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화재 창고에 들어간 덩굴 로봇…2주 만에 내부 정찰

  • 입력 2026.10.1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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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 충남의 한 1차전지 제조공장 완제품 창고에서 불이 났다. 화재는 건물 전체로 번지지 않고 진화됐지만, 창고에 보관돼 있던 군용 1차전지 팩 21만여 개 가운데 상당수가 타지 않은 채 고열에 노출된 상태로 남았다. 배터리가 뒤늦게 열폭주를 일으키거나 연쇄 폭발할 위험이 있어 소방대원의 내부 진입은 진화 뒤 약 2주 동안 통제됐다. 소방청 국립소방연구원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유지환 교수 연구팀과 함께 덩굴처럼 유연하게 뻗는 연성 이동형 ‘바인 로봇’을 투입해 창고 내부 안전 상태를 확인하고 정찰을 마쳤다고 밝혔다.

내화 설비로 불길 막았지만 남은 배터리는 위험 요인

국립소방연구원에 따르면 해당 공장 창고는 철근 콘크리트 내진·내화 구조로 지어졌고, 내부에는 내화 격벽이 설치돼 있었다. 배터리 보관 선반마다 자동확산소화기 등 연소 확대를 막기 위한 설비도 갖춰져 있었다. 연구원은 이런 설비가 작동해 화재가 조기에 진압됐고, 건물 전체가 전소되는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화재가 번지는 것을 억제한 설비는 동시에 창고 안에 있던 배터리 상당수가 완전히 타지 않고 고열을 받은 상태로 남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진화 뒤에도 배터리 내부에 열이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고열에 노출된 미반응 배터리가 이후 2차 열폭주를 일으키거나 연쇄 폭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소방당국은 내부 진입을 막고 건물 외부에서 상태를 살폈다. 진화 후 약 2주 동안 소방 인력은 내부에 들어가지 못했고 외측 점검과 모니터링만 진행했다. 연구원은 당시 남아 있던 배터리가 2024년 6월 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에서 연쇄 열폭주를 일으킨 배터리와 동일 모델이라고 밝혔다.

구분규모·기간
창고에 보관된 군용 1차전지 팩21만여 개
화재 진화 뒤 내부 접근 통제약 2주
아리셀 화재 당시 폭발 파편 비산 거리200m

아리셀 화재에서는 리튬 배터리의 연쇄 열폭주로 건물 전체가 소실됐고, 폭발 파편이 200m 밖까지 날아갔다. 이번 창고에서도 미반응 배터리의 추가 반응 가능성이 남아 있었던 만큼, 진화가 끝났다는 이유만으로 내부에 들어가 잔류 상태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소방당국은 외부에서 현장을 지켜보는 동안 내부 정찰에 쓸 장비를 검토했다.

장비 하중이 배터리를 자극할 가능성에 주목

국립소방연구원은 무한궤도형 장비나 4족 보행 로봇을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장비 자체의 하중이 바닥에 놓인 미반응 배터리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었다. 배터리에 물리적 압력이 전달되면 2차 열폭주를 유발할 수 있다고 연구원은 분석했다. 내부 상황을 확인하려고 장비를 넣는 과정이 오히려 남아 있는 배터리에 자극을 줄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연구원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KAIST 유지환 교수 연구팀과 협력해 초경량 공압 팽창식 구동 방식의 바인 로봇을 투입했다. 바인 로봇은 압축 공기를 주입하면 식물 덩굴이 자라듯 몸체가 유연하게 전개되는 구조다. 지면에 가해지는 하중을 최소화하면서 좁은 공간을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연구원은 이 로봇의 구동 방식이 바닥에 놓인 미반응 배터리에 물리적 자극을 줄이는 데 적합하다고 보고 현장 정찰에 활용했다.

바인 로봇은 사람이 내부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창고 안으로 전개됐다. 연구원은 로봇을 활용해 내부 안전 상태를 확인하고 정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밝혔다. 현장에는 미연소 배터리가 다수 남아 있었고, 소방 인력의 진입이 차단된 상태였다. 이에 따라 로봇을 통해 내부를 살핀 이번 작업은 대원이 직접 접근하지 않고 내부 상황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연구원은 이를 실제 배터리 화재 현장에 투입한 정찰 사례로 제시했다.

방호벽 설치하고 안전구역에서 원격 조종

로봇 투입 과정은 건물 밖에서 원격으로 조종하는 대원의 안전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연구원은 건물 외부에 방호벽을 설치하고, 대원은 안전구역 안에서 특수 보호장구를 착용한 채 로봇을 조종했다. 로봇을 투입하는 동안에도 대원은 위험이 남은 창고 내부에 들어가지 않았다. 내부 정찰을 수행하는 장비와 조종 인력이 분리된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졌다.

바인 로봇은 압축 공기를 주입해 몸체를 덩굴처럼 뻗게 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연구원은 지면 하중을 최소화해 미반응 배터리에 물리적 자극을 주지 않으면서 협소한 공간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거운 장비가 바닥의 배터리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응해, 바닥에 전달되는 하중을 낮추는 구동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원격 조종과 방호벽 설치, 안전구역 설정, 특수 보호장구 착용을 병행해 정찰을 진행했다.

이번 작업에서 확인한 것은 창고 내부의 안전 상태다. 연구원은 현장에 남은 미반응 배터리의 위험 때문에 내부 접근이 약 2주 동안 제한됐던 상황과, 바인 로봇을 투입해 정찰을 마친 경과를 공개했다. 다만 자료에는 로봇이 이동한 거리나 정찰에 걸린 시간, 내부에서 확인한 개별 배터리의 상태 등 세부 수치는 제시되지 않았다.

실증 자료를 정찰 지침과 로봇 개발에 활용

국립소방연구원은 이번 화재에서 확보한 실증 정찰 데이터를 군부대와 산업단지의 대규모 1차전지 관련 시설 화재에 대비한 안전 정찰 기법 지침 수립에 활용할 계획이다. 배터리 화재 현장에서 내부 진입이 제한될 때 어떤 방식으로 정찰할지 매뉴얼을 마련하고, 이번 현장에서 얻은 정보를 과학적 화재 감식에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연구원은 현장 정찰을 통해 확보한 데이터를 이후의 화재 대응 절차와 분석에 사용할 자료로 삼기로 했다.

KAIST와 국립소방연구원 화재원인분석팀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링컨연구소의 국가 안보 연구개발 사업과 연계한 재난로봇 개발에도 관련 데이터를 활용할 예정이다. 해당 사업은 MIT 링컨연구소가 주도하는 국가 안보·국방 연구개발 사업인 ‘링컨 프로그램’이다. 소방연구원은 KAIST와 함께 이 연구개발 사업에 제안 중인 과제의 보충 자료로 이번 실증 데이터를 연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장에 투입한 로봇의 운용 결과를 연구개발에 반영하는 작업도 이어진다.

김연상 국립소방연구원장은 “실제 화재 현장의 요구 조건과 극복 과제를 로봇 개발에 직접 반영해 대원의 안전을 확보하고, 임무 완수를 지원하는 현장 중심 로봇 기술 고도화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이번 정찰 데이터를 안전 정찰 지침 마련과 화재 감식에 활용하고, KAIST와 추진 중인 재난로봇 개발 과제에도 반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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