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순한 건축」(부제 아파트에서 식물원까지 공간은 어떻게 우리를 만드는가)이 2026년 11월 20일 나왔다. 지은이는 조진만 지음이다. 펴낸 곳은 미래의창이다.
분야는 인문학, 정가는 25,000원, ISBN은 9791124073452이다.
책소개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공간을 고른다고 믿는다 그러나 공간이 먼저 우리를 고르고 있었다 * 승효상 · 송길영 · 이제석 추천도서!
* 건축가의 눈으로 다시 읽은, 공간이 우리를 다루는 방식 도서관 문을 열면 목소리가 낮아진다. 박물관 진열장 앞에서는 손이 저절로 뒷짐을 진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건축가 조진만은 그러한 행동의 이유를 공간의 배치에서 찾는다. 문과 복도는 사람이 가는 길을 정하고, 의자와 벽은 머무는 자리를 정한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사람의 행동을 조직하는 공간의 기본 틀, ‘유형’이다.
《불순한 건축》은 익숙해서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공간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학교와 아파트, 일터와 도서관, 박물관, 광장과 길, 공원, 동물원과 식물원. 학교에서는 이름보다 번호로 불리는 데 익숙해지고, 동물원에서는 유리 너머의 생명을 구경하는 일이 당연해진다. 그러나 사람은 설계대로만 행동하지 않는다.
배우도록 마련한 교실에서 졸고, 때로는 도망칠 궁리를 한다. 방마다 이름을 붙이고 용도를 정해도, 삶은 도면처럼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 저자는 삶이 설계의 질서를 어기는 자리에서 ‘불순함’을 읽는다. 공간은 어떤 삶을 받아들이고, 어떤 삶을 밀어낼까.
설계와 삶은 어디서 어긋나는가 모래섬이던 여의도 한가운데에는 전쟁이 나면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도록 넓은 아스팔트가 깔렸다. 국군의 날에는 탱크와 미사일 행렬이 지나갔다. 1973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 집회에는 100만 명이 넘게 모였고, 1981년에는 군사 정권이 기획한 ‘국풍 81’이 열렸다.
광장은 행사를 위해 비워둔 바닥이었다.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면 아이들은 남겨진 미사일 발사대에 올라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부모들은 탱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활주로와 사열대로 설계된 공간은 놀이터로 쓰였다. 건축가 조진만은 이 장면을 국가가 세운 질서에 시민들이 남긴 ‘불순한 균열’이라 쓴다.
책은 먼저 각 공간의 유형이 어디서 왔는지 살핀다. 서구에서 오랜 세월 고쳐가며 자리 잡은 근대 건축의 유형들은 한국이 식민지기와 전쟁, 산업화를 지나는 동안 빠르게 표준이 되었다.
1962년 문교부가 학교 시설 표준 설계 지침과 표준도를 만들면서 전국의 학교는 지역과 대지의 조건이 달라도 비슷한 모양을 갖췄다. 《불순한 건축》은 아파트에서 식물원까지 아홉 가지 유형의 공간을 살핀다.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하도록 요구받았고, 실제로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좋은 의도는 왜 칸막이가 되었나 사람을 위해 만든 공간이 사람을 관리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미국 가구회사 허먼 밀러의 개발자 로버트 프롭스트는 일하는 사람의 자세와 방식에 맞춰 바꿀 수 있는 가구 ‘액션 오피스’를 구상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가구를 이용해 좁은 사무실에 더 많은 직원을 배치했다. 사무실에는 칸막이가 늘어났다. 한국의 대기업으로 건너온 칸막이에는 위계까지 얹혔다. 칸막이 높이는 권한을 뜻했다.
집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한국의 아파트는 위생과 편리를 약속하며 들어왔다.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서 하던 부엌일은 싱크대 앞에 서서 하는 일이 되었고, 마당 끝에 있던 변소는 수세식 화장실이 되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생활은 편리해졌다. 아파트 단지에는 공원과 놀이터, 주차장도 들어섰다. 이 시설들은 울타리 안에 사는 주민들만을 위한 공간이 되기도 했다.
벽이 사라지면 공간은 열리는가 요즘 도서관은 카페 같고, 사무실은 라운지 같다. 저자가 보기에 건축가들이 오랫동안 말해 온 복합성과 유연성은 이미 도시 곳곳에서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공간을 쓰는 방법까지 자유로워지지는 않았다.
카페 같은 도서관에도 좌석 예약제가 있고, 건물에 들어가려면 앱으로 인증하거나 QR 코드를 찍어야 하는 곳도 있다. 저자는 새롭게 생겨난 경계에 대해 이렇게 쓴다. “건축가가 벽을 허무는 동안 플랫폼은 조용히 로그인 창을 세웠다.”
공간의 모든 쓰임을 계획할 수는 없다. 마지막 장에는 저자가 직접 겪은 일이 나온다. 고가 하부 재생 사업에서 저자는 그늘에서도 버티는 식물을 심으려 했지만, 구청은 준공 날짜에 맞춰 식생을 걷어내고 플라스틱 조화를 설치했다. 이듬해 늦봄, 조화 사이로 개망초가 자라 있었다. 건축가도 행정도 계획하지 않은 식물이 공간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닫는 글에서 저자는 설계에 여지를 남겨두자고 말한다. 방에 이름을 붙이더라도 그 쓰임까지 고정하지 말고, 완성의 일부는 시간에 맡기자는 것이다. 책은 이렇게 끝난다. “어쩌면 우리가 이 복잡한 삶을 견디기 위해 건축을 지독하게 분류하고 정돈해 온 것은 아닐까. 당신은 왜 이토록 완결된 공간을 원했는가.”
목차는 다음과 같다.
여는 글 공간을 쓰는가, 공간에 쓰이는가?
1장 학교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던 날들 그날의 공기 | 배움의 원형과 타락의 연대기 | 해부대의 시선 | 마당과 누각 사이, 병산서원 | 표준 설계도의 유령 | 마을이 된 학교 | 사라진 교실의 벽 | 그날의 공기를 바꾸는 일 2장 아파트 우리는 집을 샀고 집은 삶을 정했다 집이 먼저 깨어난다 | 새로운 삶의 표준, 바이센호프 주거단지 | 기능으로 나뉜 방, 자산이 된 집 | 겹겹의 문으로 세워진 사적 요새 | 마당을 삼킨 거실 | 남향의 적막, 북향의 노동 | 집과 바깥 사이의 한 겹, 발코니 | 도시를 삼킨 단지 | 삶을 찍어내는 금형 | 복제할 수 없는 삶의 형식 | 거주한다는 것 3장 일터 효율은 우리를 어떻게 길들였나 벌레가 된 아침, 지각의 공포 | 자본이 세운 바벨, 시그램 빌딩 | 관료의 미로가 된 기록관, 동인도회사 | 식민이 남긴 격자, 삼일빌딩 | 성공의 규격을 입은 사옥들 | 격자의 해부학 | 서로를 마주하는 일터 | 용도를 열어둔 장소 | 모두에게 똑같은 책상이 주어졌다 4장 도서관 우리는 책보다 침묵을 먼저 배운다 불타는 책 | 지식을 가둔 건축, 규장각 | 용해된 언어, 목록함의 유령 | 도시를 비켜선 지식의 사원, 남산도서관 | 냉전이 지은 화강암 신전, 국립중앙도서관 | 관계를 회복한 낡은 교사, 정독도서관 | 책을 지키는 그늘, 사유를 여는 빛 | 지식의 숭고 | 빈 중심을 둘러싼 창가, 엑서터 아카데미 도서관 | 풍경이 된 도서관 | 배경이 되어버린 책 | 불타지 않는 자리 5장 박물관 기억의 서랍은 누가 채우는가 누구나 자기만의 박물관을 가진다 | 궁궐을 박람회장으로 만든 시대 | 국보를 오려 붙인 콘크리트 | 금단의 땅에 세운 이정표, 전쟁기념관 | 성벽의 침묵과 콘텐츠의 반란, 국립중앙박물관 | 취향을 전시하는 자본 | 기억보다 먼저 세운 궁궐 | 공간 그 자체가 전시가 될 때 6장 광장과 길 권력은 왜 텅 빈 광장을 원했을까 국가의 스크린, 도시의 압력밸브 | 아스팔트를 덮은 초록 마스크 | 발효된 광장의 깊은 맛 | 재료가 만든 관계의 구조 | 거리의 계보, 사라진 골목들 | 모든 길이 광장이었다 7장 공원 깨끗해질수록 공원은 사라진다 느슨한 연대의 풍경 | 권력의 정원에서 도시의 심장으로, 센트럴 파크 | 하워드의 다이어그램, 가우디의 골격 | 이식된 풍경과 야만의 계절 | 일상을 통과하는 공원 | 120년의 진공을 메우는 마지막 시험지 8장 동물원 유리 너머의 동물, 유리 이편의 우리 브라운관 속의 스파이 | 철창에 갇힌 것은 동물만이 아니었다 | 궁궐에 들어선 동물원, 창경원 | 노아의 방주는 왜 칸을 나눴나 | 펭귄의 고문실이 된 걸작, 런던 동물원 | 평양보다 더 크게 지으라, 서울대공원 | 투명한 우리, 사파리에서 수족관까지 | 유리 이편의 우리 9장 식물원 자연을 살린다는 아름다운 착각 건축이라는 원죄와 녹색의 면죄부 | 녹색 금을 가둔 기하학의 감옥 | 유리 궁전과 기후 조작 기계, 수정궁 | 조선의 온실은 땅을 품고 있었다 | 표본이 된 식물, 삶이 된 온실 | 자본의 산소호흡기 | 조화 사이로 개망초가 자랐다 닫는 글 명사를 넘어 동사가 시작되는 건축 참고 문헌 | 이미지 출처
지은이 소개는 다음과 같다.
조진만 (지은이)
건축가. 정해진 사용법을 의심하며 공간에 스며든 안이함과 타성을 파고든다. 장소에 잠재된 가능성을 새로운 쓰임과 관계로 엮어왔다.
도시의 잘린 절벽에 세운 창신동 ‘채석장 전망대’, 독서와 산책을 연결한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 흙과 지형 자체를 놀이로 삼은 ‘산마루 놀이터’, 삼대가 따로 또 함께 살도록 입체적 마당을 둔 ‘층층마루집’을 설계했다.
버려진 군용 벙커를 바꾼 대방동 ‘청소년 벙커’, 고가도로 아래 빈 공간을 활용한 ‘다락옥수’, 닫혀 있던 취수탑을 사색의 장소로 바꾼 수성구 내관지 ‘생각을 담는 길’, 디지털 건축가. 정해진 사용법을 의심하며 공간에 스며든 안이함과 타성을 파고든다.
장소에 잠재된 가능성을 새로운 쓰임과 관계로 엮어왔다. 도시의 잘린 절벽에 세운 창신동 ‘채석장 전망대’, 독서와 산책을 연결한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 흙과 지형 자체를 놀이로 삼은 ‘산마루 놀이터’, 삼대가 따로 또 함께 살도록 입체적 마당을 둔 ‘층층마루집’을 설계했다.
버려진 군용 벙커를 바꾼 대방동 ‘청소년 벙커’, 고가도로 아래 빈 공간을 활용한 ‘다락옥수’, 닫혀 있던 취수탑을 사색의 장소로 바꾼 수성구 내관지 ‘생각을 담는 길’, 디지털 금융 시대에 은행의 역할을 돌봄과 일상의 만남으로 넓힌 ‘하나은행 노원 사옥’ 등도 주요 작업이다.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에 건축 칼럼을 연재하며 공간과 삶의 통념을 도발하고 직시하는 글을 써왔다. 대한민국 젊은건축가상, 신진건축사대상, 공간문화대상, 서울시 건축상, 세계건축상 등으로 작업을 인정받았고, 미국 《아키텍처럴 레코드》의 ‘디자인 뱅가드’에 선정되었다.
저서로 《그를 만나면 그곳이 특별해진다》가 있다. 말보다 실천을 앞세워 왔다. 건축은 발로 장소를 읽어내며 생각을 세우는 일이라 믿는다. 이 책도 그 몸짓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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