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배우 최불암 별세
‘전원일기’ ‘수사반장’으로 국민적 사랑
박정희 대통령·정주영 창업주가 열혈 팬
정계 몸담고 어린이 후원활동도
‘국민 배우’라 일컬어지는 배우가 몇 있다. 물 흐르듯 세월을 연기하다 보니 대중이 그렇게 인정했다. 최불암(본명 최영한)은 그중 대표 격인 배우다. 그 이름에는 ‘국민 아버지’라는 별칭도 늘 따라붙는다. “배우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을 대신해야 한다”는 연기철학으로 한국인의 정(精)을 담은 연기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드라마 ‘전원일기’의 김 회장, ‘수사반장’의 박영한 등을 연기하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배우 최불암이 별세했다. 향년 87세. 30일 방송계에 따르면 최불암은 전날 밤 10시30분쯤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3월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후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재활에 힘써왔으나 최근 건강이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불암산서 따온 이름, 브라운관에 새겨
최불암은 1939년(호적상 1940년생) 인천 제물포구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앙고와 서라벌예대와 한양대 영화과를 졸업했다. 연출가를 꿈꾸며 1959년 극단 ‘실험극회’에서 연극 ‘햄릿’으로 데뷔했고, 이후 1965년 국립극단 단원으로 본격적인 연기 활동에 나섰다. 1967년 서울중앙방송(현 KBS) 특채 탤런트로 뽑히며 TV드라마에 진출했다.
연기 활동을 시작하며 쓰게 된 예명 불암은 불암산(佛岩山)에서 따왔다. 선배인 최병렬 전 서울시장이 그의 본명인 최영한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의 부친이 35세의 이른 나이로 과로로 세상을 떠나자, 조카만큼은 장수하길 바랐던 큰아버지가 지어줬다고 한다.
웅장하게 솟은 불암산처럼 최불암의 이름은 브라운관을 통해 입소문 나기 시작했다. 20대의 나이에 드라마 ‘수양대군’(1967)에서 나이 든 김종서를 연기하는 등 작품을 위해서라면 나이와 맞지 않은 노역도 가리지 않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면서다.
‘개구리 남편’(1969) ‘강변 살자’(1970) 등을 거쳐 드라마 ‘수사반장’의 주인공 박영한 반장을 맡으며 최불암은 스타덤에 오른다. 1971년 시작해 1984년 종영됐다가 이듬해 부활해 1989년까지 18년간 사랑받은 시리즈다. 오랜 기간 연출자가 바뀌는 와중에도 최불암은 항상 자리를 지키며 한국 수사극의 상징이 됐다.
특히 이 작품은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당시 즐겨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불암이 생전 남긴 회고록 등에 따르면 육영수 여사가 최불암에게 전화해 남편과 국민 건강이 염려된다며 “담배 피우는 장면을 조금 줄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최불암은 “나쁜 행동을 하면 국민들도 따라 한다는 게 무서운 제약”이라며 이를 평생의 교훈으로 삼았다고 회고했다.양촌리 김 회장과 ‘국민 아버지’
최불암은 한국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를 통해 ‘국민 아버지’로 자리매김했다. 1980년 첫 방송을 시작해 22년간 방영된 이 드라마에서 그는 양촌리 김 회장(김민재)을 맡아 한국의 전통적인 아버지상을 그려냈다. 근검절약을 중요시하고 과묵하면서도 속정 깊은 역할이었다. 트레이드 마크인 “파하~”하는 웃음이 여기서 나왔다.
급격한 도시화로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던 시절에서 김 회장은 한국인이 마음 한편에 간직해오던 고향과 가족의 모습을 상징했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며 종종 드러나는 위선적인 모습까지 현실적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최불암 곁에서 아내 이은심을 연기하며 ‘국민 엄마’가 된 김혜자도 빛났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전원일기’와 최불암의 팬으로 유명하다.
정작 최불암 자신은 일찍 아버지를 여읜 탓에 부정(父情)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대신 그에게 여느 아버지들처럼 삶의 태도와 사람 대하는 법을 가르쳐준 건 어머니였다. 그의 모친은 서울 명동에서 막걸리 주점 ‘은성(銀星)’을 운영했다. 화가 김환기, 시인 천상병 등 당대의 예술인들이 드나들던 사랑방으로 유명한데, 어려운 형편에도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단골들에 외상장부를 써줬다고 한다. 자식을 엄격하게 가르치면서도 이웃을 배려하는 넉넉한 품을 어머니를 최불암이 인생의 조력자이자 스승으로 꼽은 이유다.
연기 영역을 벗어난 꾸준한 나눔과 봉사활동으로도 최불암은 ‘국민 아버지’로 기억된다. 1985년부터 40년 넘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후원회장을 맡아 소외된 아동들을 지원하는 데 앞장섰다. ‘전원일기’에서 동냥하던 금동이를 데려오는 에피소드가 계기가 됐다. 30년 넘게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어려운 이웃과 어린이들을 보살핀 김혜자와 함께 사회적 귀감이 됐다. 브라운관 속 부성을 현실로 옮긴 셈이다. 미아 찾기 생방송 등 소외 어린이를 돕는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한국인의 밥상’ 알려
최불암은 잠깐 정계에도 몸담았다. 지난해 세상을 뜬 고 이순재와 함께 ‘배우 출신 국회의원’으로 기억된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권유로 1992년 통일국민당 전국구(비례대표)로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 기간 소년원 청소년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영등포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당시 정치신인이었던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밀려 낙선했다. 이후 다시 ‘전원일기’를 통해 본업인 배우로 복귀했다.
젊은 세대에게 최불암은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 진행자로 기억된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매주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지역 음식을 소개했다. 그는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모습은 똑같다”며 “이 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던 데엔 어머님들 덕분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디스크 수술 등 건강이 악화하며 하차해 아쉬움을 남겼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한 만큼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연기상,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국민훈장 목련장,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훈했다. ‘수사반장’ 출연을 계기로 명예 경찰에 위촉된 후 2024년 명예 치안정감까지 승진했다. 2009년 불암산 명예 산주(山主)로 위촉되기도 했다.
고 이순재, 고 안성기 등 지난해에 이어 최불암까지 오랜 세월 사랑받았던 원로 배우들이 세상을 떠나며 각계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에 “우리 시대의 아버지로 오랜 세월 국민 곁을 지켜주신 선생님을 기억하겠다”고 애도했고,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6월 병문안 당시 ‘머잖아 막걸리 한잔하자’며 손을 잡아줬다”고 회고하며 “끝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먼 길을 배웅하게 돼 먹먹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적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30년 전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보급 배우’ 인 선생님과 경쟁했던 것은 영광이었다”고 했다.
최불암의 유족으로는 배우 김민자 씨와 아들 동녘, 딸 동비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장례는 평생 어린이·청소년을 위해 헌신해 온 뜻을 기리기 위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거행된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고, 이수성·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한다. 장지는 파주 동화경모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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