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냉전의 동지들

  • 입력 2026.10.1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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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동지들」(부제 중국과 북한의 우의, 그 감정의 역사)이 2026년 10월 20일 나왔다. 지은이는 그렉 브라진스키 지음, 나종남 옮김이다. 펴낸 곳은 책과함께이다.

분야는 역사, 정가는 28,000원, ISBN은 9791124618219이다.

책소개는 다음과 같다.

‘피로 맺어진 우의’는 신화인가, 수백만 인민이 살아낸 현실인가 한국전쟁의 공동 트라우마에서 원조·외교·예술교류까지 중국과 북한을 ‘동지’로 만든 공감과 눈물, 애정의 정치 2026년 6월 9일 아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평양의 중조우의탑을 찾았다.

7년 만의 국빈 방문 이틀째 일정이었다. 두 정상 부부는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들에게 화환을 바치고 묵념했고, 양국이 함께 싸운 1950년대를 ‘영원한 역사적 기억’이라 부르며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의 정신과 전통적 우의를 대대로 이어가기로 했다.

1961년 체결된 중조우호합작상호원조조약이 65주년을 맞는 해였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2019년 6월 시진핑의 평양 방문 때 북한은 성대한 매스 게임으로 손님을 맞았고, 신화통신은 “중조우의(中朝友誼)는 산처럼 높고 강처럼 길어 지극히 소중하다”고 썼다. 북한의 핵실험과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으로 불협화음이 공공연해지고 최근에는 북한이 러시아와 급속히 가까워졌지만, 고비마다 두 나라는 70여 년 전 전쟁에서 ‘피로 맺어진 우의’를 다시 불러냈다.

미국의 언론과 정책 분야는 오랫동안 중국이 ‘북한 문제’를 풀 열쇠를 쥐고 있다고 여겼고, 중국이 기대와 달리 북한을 계속 원조하면 동북아의 안정을 중시하는 전략적 계산으로 설명했다. 조지워싱턴대학교 역사학자 그렉 브라진스키는 이런 분석이 중요한 요소 하나를 놓치고 있다고 본다. 바로 감정이다.

이 책 《냉전의 동지들》은 중조동맹의 절정기인 1949~1965년을 중심으로 1992년 한중 수교까지, 중국공산당과 조선노동당이 ‘중조우의’의 이름으로 서로를 향한 공감과 감사, 애도와 분노를 어떻게 만들고 가르치고 연출했는지 추적한다. 저자의 주장은 분명하다.

“만약 이러한 우의가 없었다면, 중국과 북한은 결코 공산주의 국가로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2026년 초에 출간된 원서의 결론에서 저자는 “중국의 대북 정책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기대하거나, 베이징이 평양을 압박해 미국과 협력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희망하는 이들은 실망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원서가 나온 지 반년도 되지 않아 평양에서 벌어진 장면은 이 진단을 그대로 확인해주었다.

중국과 북한의 1차 사료를 직접 탐독해 써낸 동아시아 국제사 연구자 그렉 브라진스키의 역작 그렉 브라진스키는 조지워싱턴대학교 역사학·국제관계학 교수다. 엘리엇 국제관계대학원 아시아학 석사과정 주임을 맡고 있으며, 대학의 냉전 연구 모임인 ‘조지워싱턴 냉전그룹’을 이끌고 있다. 코넬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의회도서관 클루지 펠로십, 스미스리처드슨 재단 신진교수 펠로십, 우드로윌슨센터 펠로십을 받았다.

미국-동아시아 관계사와 동아시아 국제사를 연구해온 그는 한국과 중국을 모두 깊이 파고들었다.

첫 책 《대한민국 만들기》(2007, 한국어판 2011)에서는 미국의 국가 건설 정책과 한국인의 주체적 대응이 맞물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끈 과정을 밝혔고, 두 번째 책 《제3세계 쟁탈전》(Winning the Third World, 2017)에서는 아시아·아프리카 신생 독립국을 무대로 벌어진 중국과 미국의 경쟁을 새로운 사료로 복원했다.

한국어와 중국어에 능통해 두 나라의 1차 사료를 직접 읽는 그에게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두 연구 축이 만나는 자리였다.

《냉전의 동지들》의 신뢰는 사료의 폭에서 나온다. 저자는 접근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2013년 이전에 중국 외교부 기록보관소에서 상당한 양의 문서를 확보했고, 이후에는 선즈화 등 중국 냉전사 연구자들의 소개장을 받아 지방 기록보관소에서 문화 교류와 연수 프로그램, 당 간부 회의 기록을 발굴했다.

여기에 미국 의회도서관과 국사편찬위원회의 북한 신문·잡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의 한국전쟁 노획 문서까지 아울러, 국가가 인민에게 요구한 감정과 인민이 남긴 목소리를 함께 읽어낸다. 연구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도 보태졌다.

저자는 인류학자 윌리엄 레디의 ‘정서 체제’ 개념으로 중조동맹을 읽는다. 모든 정치권력은 일련의 정서 규범을 세우고, 사람들이 그것을 표현하고 내면화하도록 만든다. 중국과 북한에서는 지도자부터 당 간부, 군인, 농민까지 모두 동맹국 전우에게 공감을 보이도록 요구받았다. 책은 지도자, 중국인민지원군, 간부, 문화 교류라는 네 무대에서 이 ‘상호 공감’이 어떻게 주입되고 수행되었는지를 차례로 보여준다.

1장은 최고지도자들이 무대 위에서 연출한 우정을 다룬다. 김일성의 국빈 방문을 앞두고 중국공산당은 환영단 지도자들이 충분한 열정으로 노래하도록 특별 훈련을 시켰고, 혹시 모를 소란을 막으려 ‘반혁명분자’를 미리 체포하기까지 했다.

한국전쟁에서 장남 마오안잉을 잃은 마오쩌둥은 아들의 유해를 북한 땅에 묻어 ‘공동의 고난’의 상징으로 삼았다. 1956년 ‘8월 전원회의’ 뒤 숙청 문제로 틀어진 두 지도자의 관계는, 이듬해 11월 모스크바에서 마오쩌둥이 북한 내정에 개입하려 했던 일을 이례적으로 사과하면서 회복되었다.

2장의 주인공은 압록강을 건넌 중국인민지원군이다. 1952년 1월 2일 평안남도 성천군에서 얼음 구멍에 빠진 북한 소년 최영을 구하고 숨진 지원군 병사 뤄성자오는 두 나라 모두에서 우의의 화신이 되었다. 김일성이 그를 기리는 비문을 직접 썼고, 2011년에는 평안남도의 한 중학교가 그의 이름을 얻었다.

북한 주민들은 지원군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해야 했고, 지원군을 돌본 북한 여성들은 ‘지원군의 어머니’로 찬양받았다. 정전 당시 북한에 남아 있던 80만 명이 넘는 지원군은 도로를 닦고 학교와 병원을 다시 지었다.

마지막 부대가 귀국한 이듬해인 1959년 10월 25일, 평양 중심부 언덕에 약 30미터 높이의 중조우의탑이 문을 열었다. 2026년 시진핑과 김정은이 헌화한 바로 그 탑이다. 탑 내부의 벽화를 디자인한 이는 정전 뒤 북한행을 택한 남한 출신 화가 이쾌대였다.

3장은 우의를 실제로 실어 나른 당 간부와 실무자들을 따라간다. 1951년부터 1959년까지 수천 명의 북한인이 연수생으로 중국, 주로 상하이에 보내졌고 그중 상당수는 전쟁고아였다. 교류는 동물원과 주방으로도 이어졌다.

1963년 북한 대표단이 표범과 호랑이를 데리고 베이징에 왔고, 1965년 중국은 평양 동물원에 자이언트 판다를 보내 북한을 소련에 이어 판다를 받은 두 번째 나라로 만들었다.

북한 요리사들은 베이징 오리 요리로 이름난 취안쥐더에서 오리 굽는 법을 배웠고, 취안쥐더 지배인은 평양 옥류관과의 교류를 제안했다.

최승희, 〈꽃 파는 처녀〉, 그리고 가장 짧은 회담 일상으로 스며든 우의와 그 퇴조 4장은 무대 위의 우정을 다룬다. 미군의 폭격이 계속되던 1953년 봄, 중국은 여성 배우들로 이뤄진 월극 공연단을 북한에 보냈다.

단원 왕원주안 등은 북한 배우들에게서 들은 〈춘향전〉을 중국 무대에 올렸고, 1950년대 중반 〈춘향전〉은 중국에서 널리 알려지고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 되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인물은 북한 무용가 최승희다.

중국에서 수많은 제자를 가르친 최승희는 무용극 〈어머니〉를 통해 전쟁 속 조선인의 슬픔과 분노를 표현했다. 그의 중국인 제자들은 “춤이 감정에 의해 이끌리고, 감정이 춤을 통해 전달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눈물을 흘리게 했다”고 회고했다.

최승희는 중국 무용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예술가인 동시에, 중국과 북한의 상호 공감을 체현하는 존재였다. 전쟁 중에도 양국이 문화 교류를 중단하지 않은 것은 공연과 예술이 중조우의의 형성과 유지에서 얼마나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했는지를 보여준다.

5장은 1965년부터 1992년까지 우의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문화대혁명기 홍위병은 북한을 ‘수정주의 세력’으로 낙인찍고 김일성을 비난했다.

그러나 1972년 9월 중국에서 상영되기 시작한 북한 영화 〈꽃 파는 처녀〉는 이듬해 베이징에서만 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은 것으로 추산될 만큼 ‘신드롬’을 일으켰다. 1975년 4월 마지막으로 김일성을 만난 마오쩌둥은 “나는 올해 여든두 살이오. 거의 죽어가고 있소.

나는 정치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소”라며 정책 논의를 피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소식을 전하러 평양에 간 첸치천

목차는 다음과 같다.

한국어판 서문 서론 1장 지도자 2장 중국인민지원군 3장 간부 4장 문화 교류 5장 중조우의 시대의 종언 결론 감사의 말 / 주 / 참고문헌 / 그림 출처 / 찾아보기

지은이 소개는 다음과 같다.

그렉 브라진스키 (Gregg Brazinsky) (지은이)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역사학·국제관계학 교수. 엘리엇 국제관계대학원 아시아학 석사과정 주임도 맡고 있다. 위스콘신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코넬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의회도서관 클루지 펠로십, 스미스리처드슨 재단 신진교수 펠로십, 우드로윌슨센터 펠로십 등을 받았다.

미국-동아시아 관계사와 동아시아 국제사를 연구하며, 특히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오간 상품·사상·문화의 흐름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한국어와 중국어에 능통해 한국과 중국의 1차 사료를 직접 읽고 분석한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어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역사학·국제관계학 교수.

엘리엇 국제관계대학원 아시아학 석사과정 주임도 맡고 있다. 위스콘신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코넬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의회도서관 클루지 펠로십, 스미스리처드슨 재단 신진교수 펠로십, 우드로윌슨센터 펠로십 등을 받았다.

미국-동아시아 관계사와 동아시아 국제사를 연구하며, 특히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오간 상품·사상·문화의 흐름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한국어와 중국어에 능통해 한국과 중국의 1차 사료를 직접 읽고 분석한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어, 스스로 지은 한국 이름 ‘배투호’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한국어로도 번역 출간된 첫 책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 경제 성장과 민주화, 그리고 미국》에서 미국의 국가 건설 정책과 한국인의 주체적 대응이 어떻게 맞물려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끌었는지 규명했고, 두 번째 책 《제3세계 쟁탈전: 냉전기 중-미 경쟁(Winning the Third World: Sino-American Rivalry during the Cold War)》에서는 아시아·아프리카 신생 독립국을 무대로 벌어진 중국과 미국의 경쟁을 새로운 사료로 복원했다.

중국과 북한의 동맹 관계를 ‘감정의 역사’로 읽어낸 《냉전의 동지들》은 그의 세 번째 책이다.

나종남 (옮긴이)

전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미국 현대사와 냉전 연구, 군사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아메리카학회, 한국군사사학회, 한국전쟁학회 등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한국전쟁, 냉전기 군사사, 한국군 역사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 《군사작전을 통해 본 6·25전쟁》,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번역), 《군사전략 입문》(번역), 《2차대전 해전사》(번역), 〈한국전쟁 중 한국 육군의 재편성과 증강, 1951~53〉, 〈백마고지 전투의 재조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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