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무한한 대화…블랑쇼가 남긴 20세기 문학사상의 정수

  • 입력 2026.08.2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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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비 제공

모리스 블랑쇼가 쓰고 서지형·송태미·한석현이 옮긴 『무한한 대화』가 그린비에서 2026년 8월 31일 출간됐다. 이 책은 1959년부터 1969년까지 『누벨 르뷔 프랑세즈』 등 여러 잡지에 발표된 글을 묶은 것으로, 블랑쇼의 저작 가운데 가장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문학 언어의 본질과 말하기, 침묵, 죽음, 타자, 중성 등 블랑쇼가 평생 붙들었던 주제가 이 한 권에 집약돼 있다.

은둔 속에서 써 내려간 사유

블랑쇼는 1907년 프랑스 켕에서 태어나 2003년 이블린에서 사망했다. 젊은 시절 몇 년간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것을 제외하면 평생 공식 활동에서 물러나 글쓰기에만 전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과 인터뷰를 극도로 제한했고 작품 밖에서 자신의 삶이나 사상을 설명하는 일도 피했다. 이런 태도는 작품을 저자의 삶이나 의도로 환원하지 않으려는 그의 문학관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 출판사 측 설명이다. 1943년 첫 비평 선집 『헛디딤』을 시작으로 『문학의 공간』, 『도래할 책』, 『저 너머로의 발걸음』, 『재난의 글쓰기』 등을 발표하며 기존 문학비평의 형식에서 점차 멀어진 글쓰기를 선보였다.

결론에 이르지 않는 '무한한 대화'

『무한한 대화』에는 하나의 명제에서 출발해 단계적으로 결론에 도달하는 체계가 없다. 어떤 개념은 여러 장에 걸쳐 다른 맥락으로 반복되고, 한 번 제시된 생각은 다른 목소리에 의해 반박되거나 유보된다. 질문은 답을 얻는 대신 또 다른 질문을 낳으며 사유는 종결되지 않은 채 바깥으로 밀려난다. 책 제목이 가리키는 '무한한 대화'는 서로 다른 두 주체가 의견을 교환한 뒤 합의에 이르는 변증법적 대화가 아니라, 발화자와 청자 사이에 지울 수 없는 간격이 남는 관계를 뜻한다. 타자를 나와 동일한 존재로 환원하지 않는 관계가 계속된다는 것이 블랑쇼가 말하는 대화의 무한함이다.

세 부로 나뉜 사유의 궤적

책은 크게 세 부로 구성된다. 1부 '다층적인 말-문자언어'는 사유와 불연속성의 요구, 말하기의 문제, 미지인에 대한 앎 등을 다룬다. 2부 '경험-한계'는 헤라클레이토스와 니힐리즘, 지옥에 관한 사색, 무신론과 글쓰기 등을 거치며 한계-경험의 문제를 파고든다. 3부 '책의 부재-중성적인 것 파편적인 것'에서는 르네 샤르와 중성의 사유, 서술의 목소리, 책의 부재 등을 다루며 파편적 글쓰기의 기원을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카프카, 파스칼, 니체, 브레히트, 카뮈, 사드, 횔덜린, 말라르메, 아르토, 베케트 등 다양한 작가의 작품이 통과된다. 『문학의 공간』과 『도래할 책』에서 전개된 문학론이 타자와의 관계, 말하기의 윤리, 중성의 사유로 확대되는 지점이자 『저 너머로의 발걸음』과 『재난의 글쓰기』에 나타나는 파편적 형식의 기원도 이 책에서 확인된다는 것이 출판사 측 설명이다.

'바깥의 사유'가 가리키는 것

블랑쇼의 사유를 이해하는 열쇠 중 하나로 '바깥'이 꼽힌다. 미셸 푸코가 블랑쇼의 글쓰기를 설명하며 사용한 '바깥의 사유'라는 표현은 이후 블랑쇼를 대표하는 말이 됐다. 바깥은 주체가 언어와 세계의 중심이라는 믿음이 흔들리는 경험이자, 나의 인식과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낯선 영역을 가리킨다. 책에서 블랑쇼는 단어가 사물과 정합하지 않으며 작가가 사물의 실재를 향해 노력해도 글을 쓰는 순간 시작되는 시간의 운동 속에서 그 변화를 포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의 의도 역시 독자에게 흩뿌려지며 작가의 손을 완전히 떠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말하는 목소리는 더 이상 분명한 '나'의 목소리가 아니며, 블랑쇼가 말하는 중성의 글쓰기는 누가 말하는지 확정할 수 없는 비인칭적 상태를 가리킨다.

세 명의 옮긴이

서지형은 서울대학교에서 「모리스 블랑쇼와 탈주체의 글쓰기」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정신분석 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모리스 블랑쇼 선집 12권 『최후의 인간』을 옮겼고 『불가능한 애도』를 함께 썼다. 송태미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포스트-파리학파 기호학에 나타난 신체적 세미오시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경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담화 기호학』, 『상처받지 않는 삶』 등을 옮겼다. 한석현은 프랑스 그르노블대학교에서 롤랑 바르트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롤랑 바르트의 『미슐레』 등을 옮겼다.

『무한한 대화』는 인문학 분야로 분류되며 정가는 6만 3000원이다.

구분내용
지은이모리스 블랑쇼 지음, 서지형 외 옮김
출판사그린비
출간일2026년 8월 31일
분야인문학
정가6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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