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미술을 움직이는 돈과 권력의 지도

  • 입력 2026.08.1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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쌤앤파커스 제공

이지윤 지음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가 쌤앤파커스에서 2026년 8월 27일 출간된다. 글로벌 아트 디렉터이자 큐레이터인 저자가 서양미술을 '미술 생태계art ecology'라는 틀로 풀어낸 책으로, 작품이 만들어지고 거래되는 정치·경제·권력적 맥락을 다룬다.

왜 순수한 미술은 없다고 말하는가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은 조토 디 본도네의 프레스코화로 유명하다. 이 예배당을 지은 엔리코 스크로베니의 아버지는 파도바에서 악명 높은 고리대금업자였고, 고리대금업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세간의 인식 탓에 그들 사이에서 예배당을 짓는 일이 일종의 유행이었다. 책은 이 사연을 통해 미술사학자 마이클 백샌달이 제시한 '시대의 눈period eye' 개념을 소개한다.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문화와 교육, 종교, 경제, 사회적 경험을 통해 해석한다는 관점이다.

이 관점으로 보면 익숙한 그림들도 다르게 읽힌다. 우첼로의 전투 그림에서 쓰러진 군인조차 소실점을 향해 죽어야 했고, 크라나흐는 옆에 큐피드 하나를 그려 넣는 것만으로 '합법적인' 누드화를 완성했다. 18세기 꽃 정물화에 시들고 꺾인 꽃이 섞여 있는 것은 화가의 실수가 아니라 죽음을 기억하라는 시대의 주문이었고, 렘브란트가 평생 유화로만 40점 넘게 남긴 자화상은 내면의 기록인 동시에 스튜디오를 찾아온 고객 앞에 펼쳐 보이는 포트폴리오이기도 했다.

700년간 다듬어진 미술 생태계

미술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14세기다. 흑사병이 유럽을 휩쓴 직후 그림값은 최대 8배 가까이 치솟았고, 부를 과시하려는 신흥 상인과 죽은 이를 추모하려는 수요가 시장을 만들었다. 주문을 받아 만들던 '선주문 후제작'이 먼저 만들어 파는 '선제작 후판매'로 넘어가면서 미술품은 비로소 상품이 되었다는 것이 책의 설명이다.

이 구조는 이후 700년 동안 정교해졌다. 18세기 런던에서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문을 열었고, 세잔의 작품 150여 점을 사들여 잊힌 화가를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세운 딜러 볼라르, 마음에 드는 그림을 몇 달씩 거실에 걸어두고 확신이 서야 사들인 컬렉터 코톨드, 마티스와 세잔을 나란히 걸어두었던 거트루드 스타인의 살롱까지 작품의 운명을 바꾼 것은 언제나 '작품 밖의 사람들'이었다고 책은 짚는다.

책은 시장의 작동 원리도 정리한다. 작품 가격은 1차 시장인 갤러리에서 형성되기 시작해 학력과 전시 이력, 비영리기관 초대전 횟수, 공신력 있는 미술관의 소장 여부가 값을 쌓아 올리며, 한 작가를 꾸준히 지켜보며 작품을 사들이는 컬렉터가 200명쯤 확보되면 비평이나 미술관 소장 없이도 그 작가는 살아남는다고 설명한다. 영국이 2001년 공공 미술관 입장료를 전면 폐지해 연 600억 원 규모의 수입을 스스로 포기한 사례, 1851년 만국박람회 이후 박물관과 디자인 학교를 나란히 세운 사례도 국가가 미술 생태계를 설계한 예로 다뤄진다.

AI가 값을 매기는 시대

2025년 초 크리스티는 주요 경매회사로는 처음으로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만으로 채운 경매를 열었다. 6,500명에 가까운 작가가 반대 서명에 나섰지만 경매는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총액은 추정가를 훌쩍 넘겼으며, 입찰자의 절반 가까이가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였다. 책은 작품 사진만 올리면 추정가를 산출하는 플랫폼, 시장을 24시간 감시하며 저평가된 출품작을 알아채는 '에이전틱 AI'의 등장도 함께 소개한다. 다만 전 세계 경매 데이터의 70퍼센트 이상이 서구 백인 남성 작가에 관한 것이라는 분석을 인용하며, 알고리즘이 기존의 저평가를 통계적으로 '정당화'해버릴 위험도 짚는다.

한국 미술시장에 대해서는 2024년 전 세계 미술시장 총 거래액이 12퍼센트 줄었지만 거래 건수는 오히려 3퍼센트 늘어 4,000만 건을 넘어섰다는 수치를 든다. 흔들린 쪽은 초고가 시장의 '꼭대기'였고 두꺼워진 쪽은 여러 작가의 여러 작품이 꾸준히 거래되는 '허리'였다는 것이다. 서울에는 '프리즈 서울'에 매년 7만 명이 모여들고 세계 3대 경매사가 격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도 언급된다.

지은이는 누구인가

저자 이지윤은 글로벌 아트 디렉터이자 큐레이터로, 영국박물관 한국관 설립 실무로 경력을 시작해 20년 넘게 유럽과 한국의 현대미술을 잇는 역할을 해왔다. 2003년 런던에서 '숨 프로젝트SUUM Project'를 설립했고 (코펜하겐, 2005), (런던 사치 갤러리, 2010) 등을 기획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총괄하며 MMCA 현대차 시리즈 등 기업 협업 프로그램을 안착시켰고,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미술관 초청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미술사 석사, 시티 대학에서 미술관·박물관 경영학 석사, 코톨드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로 '창조산업과 예술경영'을 강의했으며, LG전자·하나은행 아트 컬렉션 자문위원을 맡았다.

구분내용
지은이이지윤 지음
출판사쌤앤파커스
출간일2026년 8월 27일
분야예술/대중문화
정가1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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