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노동이란 무엇인가…노동 멸시의 사상사 딛고 그리는 노동 민주주의

  • 입력 2026.08.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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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 제공

노동법학자 박홍규가 지은 『노동이란 무엇인가』가 들녘에서 2026년 8월 18일 출간됐다. 부제는 ‘노동 멸시의 역사를 넘어 노동 민주주의로’이며, ‘박홍규의 사상사’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이 책은 동서고금의 사상가와 예술가들이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했는지 통틀어 살피며,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노동이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고찰한다.

노동은 왜 멸시받아 왔는가

책은 노동의 사상사 전체를 볼 때 노동이 대체로 존중받거나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도리어 멸시당해 왔다고 짚는다. 오늘날 위대한 철학자로 꼽히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도 노동을 ‘노예나 하는 일’로 여겼다는 것이다. 이후 막스 베버 등이 노동을 신에게 나아가는 수단으로 신성화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노동 그 자체의 가치나 그것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유익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그리하여 누군가는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기에 이르지만, 이 책은 그러한 ‘노예의 노동관’을 거부한다.

노동 유토피아와 노동 민주주의

책은 인간이 자신의 노동을 유의미한 것으로 만들려 노력하고, 자신을 위해 노동하고 활동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은 개인의 자율성과 창조성을 자극함으로써 인간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노동 유토피아’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을 둘러싼 결정의 주체가 되는 ‘노동 민주주의’를 이상으로 제시하며,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가 도리어 생산과 생산물에 지배당하고 마는 ‘노동의 소외’를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동양의 묵자부터 서양의 마르쿠제까지

책은 타율적 노동과 억압되고 소외된 노동이 만연한 시대를 살면서도 자율적이고 해방적인 노동, 소외되지 않는 노동을 꿈꾼 이들을 조명한다. 동양의 묵자와 도연명, 서양의 블레이크, 푸리에, 러스킨, 모리스, 졸라, 톨스토이, 러셀, 카뮈, 베유, 프롬, 일리치, 마르쿠제 등의 노동관에 공감하며 논지를 전개해나간다. 책은 AI라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 오늘날에도 반도체 메가특구에 대해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를 예외 적용하는 정책이 논의될 만큼 생산성 향상과 효율 추구를 위한 무한 경쟁이 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짚으면서도, 현실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노동 유토피아라는 이상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1부, 근대 이전의 노동관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된다. 1부 1장은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낀다’는 일제강점기부터 뿌리 깊은 한국인의 그릇된 노동관을 비판하고, 2장에서는 노동의 의미를 고찰한다. 이어 3장부터 7장까지는 주로 중국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와 서양의 근대 이전 노동관을 검토한다.

2부, 해방적 노동과 억압적 노동

2부는 16~19세기의 노동관과 20세기의 노동관을 각각 다룬다. 노동의 사상사는 크게 해방적 노동과 억압적 노동이라는 두 흐름으로 나뉘는데, 억압적 노동은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기로부터 시작해 칼라일을 거쳐 20세기의 테일러 시스템, 융거와 히틀러 파시즘, 1930~1940년대 일제강점기의 강제 동원, 소련이나 중국, 북한 등 공산주의 체제까지 이른다고 짚는다. 특히 14장에서 다루는 파시즘의 노동관은 나치의 강제수용소 앞에 붙어 있던 “노동은 자유롭게 한다”는 말로 대표된다. 이는 노동시간 단축과 기본소득 보장을 내용으로 하는 유토피아적 탈노동을 주장하는 20세기 서양의 노동관과는 정반대에 놓인다.

주 4일, 하루 4시간과 기본소득

책은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노동시간은 짧을수록 좋고 임금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할 정도의 기본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20세기 서양 노동관에 동의한다. 이에 따라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적정한 임금과 노동환경이 보장된다는 조건하에서 주 4일, 하루 4시간 정도만 노동하면 충분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기본소득과 생태적 직업 환경이라고 짚는다. 마지막 17장에서는 노동 유토피아를 실현할 가능성이자 조건으로서 기본소득을 비중 있게 다루며, 기본소득의 역사와 그에 대한 진보와 보수, 중도 진영의 다양한 주장, 전 세계의 기본소득 시행 현황 등을 검토하고, 노동과 복지를 결합하는 기본소득 제도의 한국적 발전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노동법학자 박홍규가 담아낸 관점

책은 노동에 대한 동서양의 사상을 최초로 집대성하려 한 시도라는 의의를 지닌다. 한평생 노동법을 연구하고 가르쳐온 학자이자 노동자로서 노동자와 함께 살고자 한 인간 박홍규의 노동에 대한 생각과 관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뜻깊은 저작이라 할 수 있다.

지은이는 누구인가

지은이 박홍규는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자 저술가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아내와 함께 작은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사카대학 등에서 강의했으며, 하버드로스쿨, 노팅엄대학, 프랑크푸르트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받았다. 『우정이란 무엇인가』, 『노년이란 무엇인가』, 『간디 평전』, 『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 『불편한 인권』, 『아나키즘 이야기』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으며, 『오리엔탈리즘』, 『간디 자서전』, 『유한계급론』,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구분내용
지은이박홍규
출판사들녘
출간일2026년 8월 18일
분야인문학
정가21,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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