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이사 날짜가 다가오는 세입자들이 잇따르고 있다. 직장 이전이나 자녀 학교 문제로 이사 일정을 미루기 어려운 경우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보증금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짐부터 빼면 임차인의 법적 지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법도종합법률사무소 엄정숙 변호사는 21일 “보증금을 받지 못한 채 서둘러 이사부터 하는 것은 임차인이 가장 피해야 할 선택”이라며 “주택의 점유와 주민등록이라는 대항력 요건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셈이 되기 때문에, 임차권등기명령 절차를 마친 뒤에 이사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 전세로 살던 A씨의 사례가 이런 상황을 보여준다. A씨는 직장 이전으로 만기에 맞춰 이사해야 했고, 만기 2개월 전 내용증명으로 계약 해지와 갱신 거절 의사를 임대인에게 알렸다. 그러나 임대인은 새 임차인이 구해지면 주겠다며 반환을 미뤘고, 결국 A씨는 보증금을 받지 못한 채 집을 비워야 할 처지에 놓였다.
주택 임차인의 지위는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두 권리로 지탱된다. 대항력은 주택의 점유와 전입신고 요건을 갖추면 발생하며, 여기에 확정일자까지 받아 두면 경매 등으로 주택이 넘어갈 때 후순위 권리자보다 먼저 배당받을 수 있는 우선변제권이 별도로 인정된다. 보증금을 받지 못한 채 다른 곳으로 이사해 전입을 옮기면 이 요건들이 무너지면서 보증금 회수가 한층 복잡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제도가 임차권등기명령이다. 임대차가 끝난 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이 법원에 신청해 등기가 마쳐지면, 이후 이사하거나 주민등록을 옮기더라도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그대로 유지된다. 다만 신청서만 접수하고 곧바로 이사해서는 안 되며, 등기사항증명서에 임차권등기가 실제로 기재된 것을 확인한 뒤 짐을 옮겨야 안전하다. 2023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명령이 임대인에게 송달되기 전에도 등기를 마칠 수 있게 되면서, 임대인이 서류 수령을 피하며 시간을 끄는 문제도 다소 줄어든 것으로 평가된다.
임차권등기 이후에도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전세금반환소송으로 이어진다. 승소하면 보증금 원금과 함께 소장 부본 송달 다음 날부터 연 12%의 지연이자를 청구할 수 있고, 그래도 지급하지 않으면 임대인 소유 부동산에 대한 강제집행 절차로 회수를 시도할 수 있다. 임차권등기를 마친 임차인은 집을 비운 뒤에도 소송을 이어갈 수 있어 이주 일정과 소송 일정을 분리해 대응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임차인이 만기 2개월 전까지 해지나 갱신 거절 의사를 통보하지 않으면 계약이 묵시적으로 갱신된 것으로 처리돼 보증금 반환 시점이 뒤로 밀릴 수 있다. 묵시적으로 갱신된 계약을 임차인이 다시 해지하더라도 해지 통지가 임대인에게 도달한 날부터 3개월이 지나야 효력이 생기는 만큼, 절차와 시점을 함께 챙기는 꼼꼼한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엄 변호사는 “전세금 분쟁 대응의 기본 순서는 만기 2개월 전 내용증명으로 해지·갱신 거절 의사를 통보하고, 만기 후에도 보증금이 반환되지 않으면 확정일자와 대항력 유지 여부를 점검한 뒤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을 때 전세금반환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라며 “이사가 아무리 급하더라도 임차권등기가 등기부에 기재된 것을 확인한 다음에 집을 비우는 것이 보증금을 지키는 마지막 안전장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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