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이 음주운전 혐의자를 지구대로 데려간 뒤 입을 헹굴 물을 주지 않고 호흡 측정을 했다면, 그 결과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운전자가 잠들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입 헹굼 물 제공 절차를 생략할 수 없고, 절차를 지키지 않은 측정 결과는 형사재판에서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1·2심은 유죄를 인정했지만, 대법원은 입 헹굼 물 제공 절차를 정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의 법적 효력과 경찰의 절차 이행 여부를 다르게 판단했다.
도로 한가운데서 잠든 운전자, 지구대서 측정
경찰은 2023년 12월 저녁 8시께 도로 한가운데서 차량 시동을 켜둔 채 잠든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김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지구대로 옮겼다. 김씨는 지구대 벤치에 누워 있었고, 경찰관들은 음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호흡조사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한 경찰관이 종이컵에 물을 담아 김씨에게 다가갔지만, 김씨를 깨워 물로 입을 헹구라고 안내하거나 권하지 않은 채 돌아섰다. 이후 경찰은 누워 있는 김씨의 입 근처에 측정기를 여러 차례 가져다 대며 측정을 시도했다.
김씨는 오후 8시 50분께 갑자기 일어나 측정기에 숨을 불어넣었고, 혈중알코올농도는 0.081%로 측정됐다. 검찰은 측정된 수치보다 낮은 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 0.08% 미만 상태에서 운전한 혐의로 김씨를 재판에 넘겼다. 김씨에게는 2019년 음주운전 혐의로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전력도 있었다. 참고 자료에 따르면 사건 당시 입 헹굼 물 제공 절차는 경찰청 내부 지침에 도입된 지 6년이 넘었고,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관련 조항이 신설된 뒤에도 반년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다.
| 구분 | 혈중알코올농도 |
|---|---|
| 측정 결과 | 0.081% |
| 검찰이 적용한 범위 | 0.03~0.08% |
김씨의 주장과 1·2심의 유죄 판단
김씨는 재판에서 음주 측정 당시 경찰이 입을 헹굴 물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입 안에 남아 있는 알코올 때문에 혈중알코올농도가 실제보다 높게 측정됐을 수 있으므로, 운전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0.03% 이상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은 호흡조사 음주측정을 할 때 경찰공무원이 입 안의 잔류 알코올을 헹궈낼 수 있도록 운전자에게 음용수를 제공하도록 규정한다. 김씨는 이 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측정값을 유죄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다퉜다.
1심과 2심은 모두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은 김씨가 누워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음주측정기에 바람을 불었기 때문에 경찰이 사전에 물을 제공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봤다. 당시 상황을 종합하면 음주 측정 결과를 증거로 쓸 수 있고, 김씨가 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인 상태에서 운전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참고 자료에 따르면 1심은 입 헹굼 물 제공을 경찰 내부지침상의 절차로 보고, 음주가 끝난 뒤 일정 시간이 지났다는 점도 고려했다. 반면 대법원은 경찰의 절차가 단순한 내부 지침에 그치는지가 아니라, 시행규칙에 명시된 절차를 실제로 이행했는지가 핵심이라고 봤다.
내부 지침에서 시행규칙으로 바뀐 입 헹굼 절차
음주측정 전에 입을 헹굴 물을 제공하는 절차는 처음부터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규정된 것은 아니었다. 참고 자료에 따르면 경찰청은 2017년 3월 교통단속 처리 지침에 음용수 200㎖를 제공하도록 정했다. 이후 2023년 7월 4일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관련 조항이 신설되면서 입 헹굼 물 제공은 경찰 내부 지침을 넘어 시행규칙에 명시된 절차가 됐다. 이번 사건의 단속은 조항이 시행된 뒤 다섯 달가량 지난 시점에 이뤄졌다.
대법원은 시행규칙 조항이 법규명령의 형식과 실질을 갖췄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입 헹굼 물 제공은 경찰이 지켜야 할 절차이며, 이를 어기고 얻은 측정 결과는 형사소송법상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집된 증거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원칙을 규정한다. 대법원은 입 헹굼 물 제공 절차가 이 원칙과 연결되는 법적 절차라고 판단했다. 운전자가 실제로 물을 입에 넣고 헹구는 데까지 경찰이 강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물을 건네고 입을 헹구도록 안내하거나 권유하는 과정은 실제로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잠들어 있었어도 절차 생략할 수 없다고 판단
대법원은 경찰관들이 김씨에게 입 헹굼 물을 실제로 제공하지 않은 채 호흡조사 음주측정을 해 시행규칙이 정한 절차의 실질적 내용이 침해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경찰관들은 지구대 벤치에 누워 자고 있는 김 씨를 깨워 입 헹굼 물을 제공하면서 물로 입 안을 충분히 헹궈낼 것을 안내, 권유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게 하지 못할 부득이한 사유가 없었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채 호흡조사 음주측정만을 거듭 시도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운전자가 잠들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절차 이행이 면제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경찰관들이 김씨를 깨워 물을 건네고 입을 헹구도록 안내할 기회가 있었으며, 그렇게 할 수 없는 부득이한 이유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사건 당시 입 헹굼 물 제공 절차가 경찰청 내부 지침에서 공식적으로 전면 시행된 지 6년 넘게 지났고, 시행규칙 조항이 시행된 뒤에도 반년 가까이 흐른 때였다고 짚었다. 경찰관들이 음주 측정 전 물을 제공해야 하고 그 절차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도 밝혔다. 측정 결과를 대신할 다른 증거가 없다는 사정만으로 위법하게 확보된 결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환송했다. 이에 따라 김씨에게 선고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원심 판단은 파기됐으며, 사건은 환송심에서 다시 심리하게 됐다. 이번 판단은 입 헹굼 물 제공을 시행규칙상 절차로 보고, 이를 이행하지 않은 호흡조사 결과를 유죄 증거로 쓸 수 있는지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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