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오른팔’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별세…향년 91세

  • 입력 2026.10.2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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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검색 캡처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측근이자 상도동계 핵심 인사로 꼽힌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24일 오전 3시30분 서울 중앙보훈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1세다. 최 전 장관은 1971년 국회에 처음 입성한 뒤 모두 여섯 차례 국회의원을 지냈고,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뒤 YS 정부에서 민주자유당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을 맡았다. 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랜 기간 투병했다. 장례는 대한민국헌정회와 4·19혁명 공로자회, 민주화추진협의회가 공동으로 치른다. 빈소는 서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7일 오전 8시다.

YS와 함께한 상도동계 핵심 인사

최 전 장관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모인 정치인 그룹인 상도동계의 핵심 인사였다. 상도동계라는 이름은 YS의 서울 상도동 자택에서 유래했다. 최 전 장관은 김동영 전 정무제1장관과 함께 YS를 가까이서 보좌했고, 두 사람은 ‘좌동영 우형우’로 불렸다. 상도동계 인사로서 최 전 장관은 1970~1980년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YS와 함께 활동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70년 4월이었다. 당시 최 전 장관은 무교동 광남빌딩에 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YS를 만났다. 이듬해 최 전 장관이 신민당 소속으로 울산·울주 지역구에 출마하자 YS가 지원 유세를 했고, 최 전 장관은 제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후 두 사람은 최 전 장관이 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정치적 동지로 함께했다. YS가 대통령에서 물러나기 직전까지 두 사람의 정치적 인연은 26년간 이어졌다.

2015년 11월 YS가 별세했을 때 최 전 장관은 빈소를 찾았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그는 영정을 보자 바닥에 주저앉아 오랫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최 전 장관은 투병 중이던 2026년 4월 김영삼민주센터 명예이사장으로 추대됐다.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은 “최 전 장관은 오랫동안 민주화운동과 정치발전을 위해 힘썼다”고 밝혔다.

학생 대표에서 6선 국회의원으로

최 전 장관은 1935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부산공고를 졸업하고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마쳤다. 1960년 4·19혁명 당시에는 동국대 학생 대표로 활동했다. 1968년에는 4·19혁명과 6·3항쟁에 참여한 청년들이 중심이 된 ‘4·19 6·3 범청년회’ 사무총장을 맡았다. 1969년에는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 반대 운동을 이끌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울산·울주 지역구에 출마해 처음 당선됐다. 당시 36세였다. 이후 제9·10·13·14·15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모두 여섯 차례 국회에 입성했다. 1970년대부터 이어진 정치 활동 과정에서 신민당 부총재를 맡았고, 이후 민주당 수석부총재와 원내총무 등을 역임했다. 국회 활동과 당직을 맡으며 야권의 주요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초선 의원 시절에는 대정부 질의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을 통한 영구집권 음모를 폭로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이 일로 국군보안사령부 대공분실에 끌려가 3개월간 고문을 당했다. 1980년에는 전두환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군 보안사령부에 여러 차례 끌려갔으며, 신군부 집권 과정에서 의원직을 잃었다. 최 전 장관은 군사정권 시절 연행과 고문을 겪으면서도 이후 정치 활동을 이어갔다.

군사정권 시절 탄압과 민주화 활동

최 전 장관은 1981년 YS가 설립한 민주산악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1984년 정치활동 규제에서 해금된 뒤에는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간사장을 맡았다. 민주화추진협의회는 김영삼·김대중 두 정치인 진영이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벌이기 위해 1984년 결성한 조직이다. 최 전 장관은 간사장으로 활동하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민주화추진협의회 활동과 함께 최 전 장관은 야권 정당에서 주요 당직을 맡았다. 신민당 부총재를 지낸 뒤 민주당 수석부총재와 원내총무를 역임했다. 그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정당 조직 내에서 역할을 이어갔고,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여기에 합류했다. 합당 이후에는 정무제1장관을 맡았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시기를 거쳐 정부와 여당의 직책을 맡게 된 과정이다.

최 전 장관은 1993년 자전 에세이 ‘더 넓은 가슴으로 내일을’을 펴냈다. 책 표지에는 “역사의 장이 넘어간 뒤 ‘여보시오, 정치인들 그때 당신들은 무엇을 했소’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을 할 것인가”라는 문장이 담겼다. 1980년대 민주화추진협의회 간사장과 야당 당직을 거쳐 정무제1장관을 지낸 그의 정치 이력은 군사정권 시절과 3당 합당 이후를 아우른다. 그가 맡았던 직책과 국회 활동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시기부터 여당과 정부에서 활동한 시기까지 이어졌다.

문민정부 장관과 뇌졸중 이후의 투병

1992년 12월 YS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최 전 장관은 민주자유당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뒤에는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등 개혁 작업을 뒷받침했다. 1995년에는 청와대에서 당무위원 임명장을 받았고,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당시 신한국당의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된 이른바 ‘9룡’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혔다.

최 전 장관은 1996년 정부엑스포96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같은 해 인터뷰에서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를 만나 정보사회의 도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듣고 비전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선 행보를 이어가던 1997년 3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원영일씨와 딸 은지·은실씨, 아들 석균·제완씨가 있다. 장례위원장은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이 맡는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공동장례위원장으로 참여한다.

최 전 장관의 빈소는 서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이며, 장지는 국립 4·19민주묘지다. 장례는 대한민국헌정회와 4·19혁명 공로자회, 민주화추진협의회가 공동으로 치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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