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코리아 국회토론회… “처벌 넘어 R&D·예방투자·안전보건공시로 전환해야”

  • 입력 2026.08.1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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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코리아는 지난 11일 국회에서 ‘ESG로 설계하는 안전보건경영’ 출판을 기념해 ‘산업안전 패러다임 전환과 안전보건공시제 시대의 개막’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처벌과 규제 위주의 산업안전정책에서 벗어나 연구개발(R&D)과 예방투자, 노동자 참여, 안전보건공시를 축으로 한 국가 산업안전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첫 발제를 맡은 윤조덕 한국사회정책연구원 원장은 국가 차원의 산업안전 R&D 투자가 지나치게 미미하다고 짚었다. 그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6년 안전보건공단 전체 예산 1조4828억원 가운데 안전보건연구개발 예산은 32억4100만원으로 전체의 0.22%에 그친다. 국제협력 예산까지 합쳐도 0.47% 수준이고, 정부 차원 R&D 예산은 0.10%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 원장은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이 강화됐음에도 5인 미만 사업장의 제도 사각지대, 50인 미만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체계 미비, 난청·근골격계·뇌심혈관 질환 등 직업성 질환이 여전히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고 이후의 감독·처벌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빠르게 바뀌는 산업구조의 위험요인에 대응하기 어려운 만큼, 연구개발부터 위험성평가·예방투자·정보공시로 이어지는 예방 중심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두 번째 발제자인 김진경 지속가능경영재단 ESG전략담당이사는 새로 시행되는 안전보건공시제가 사고 건수나 재해율을 단순 공개하는 데 머물지 않고, 기업의 안전보건 투자와 경영진 책임, 위험성평가 등 실질적인 예방활동 수준을 보여주는 제도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안전보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기업의 자발적 예방투자를 이끌어내고, 안전을 비용이 아닌 지속가능성·ESG 경쟁력을 높이는 투자로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취지다.

축사에 나선 염태영 국회의원은 “우리 사회가 산업안전을 사고 발생 이후 대응하는 문제에서 벗어나 위험을 미리 예방하는 국가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며 “산업재해는 노동자의 생명뿐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 전체의 신뢰에 직결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ESG가 환경과 지배구조를 넘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안전보건까지 포괄해야 하며, 안전보건공시제가 기업의 자발적 안전투자를 촉진하고 예방 중심 안전관리 문화를 확산하는 제도로 정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전보건공단 김인우 경영기획이사도 축사를 통해 산재 예방과 안전보건경영 확산을 위한 공단의 역할, 현장 중심 안전문화 정착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조준호 ESG코리아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이번 출판과 토론회가 산업안전을 ESG의 핵심 의제로 본격 제기하는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조 이사장은 ‘ESG로 설계하는 안전보건경영’이 산업안전보건과 ESG·SDGs·노동 분야 전문가들의 연구와 현장 경험을 담은 정책총서라며 “노동자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기업과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또 원·하청 간 위험의 외주화를 줄이고 공급망 전체의 안전보건 수준을 높이는 한편,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기업의 자발적 예방투자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지정토론에서는 안전보건공시제가 실질적인 산재 예방수단이 되기 위한 과제들이 제기됐다. 이호동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는 공시된 안전보건 수준과 기업의 안전투자 실적을 금융·공공입찰·ESG 평가와 연계해 안전투자가 기업가치로 이어지는 시장 유인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기업·노동계·학계가 함께 참여하는 다자간 거버넌스 구축의 필요성도 나왔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ESG를 통한 산재 감축에서 노동자의 실질적 참여가 핵심이라고 강조하며, 소규모 사업장과 특수고용·이주노동자에 대한 근본 대책이 여전히 부족하고 대기업에서도 중대사고가 이어지는 현실을 지적했다. 안전담당자 중심의 형식적 위험성평가에서 벗어나 노동자가 직접 위험요인을 찾고 개선안을 제안하는 상향식 참여형 위험성평가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정구현 노무법인 한그루 대표는 안전보건공시제가 또 하나의 행정서류나 형식적인 안전보건 홍보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경계했다. 그는 “아차사고를 적극적으로 찾아 500건을 보고한 기업이 5건만 보고한 기업보다 공시상 불리하게 평가된다면 기업이 위험을 적극적으로 찾아 공개할 유인이 사라질 수 있다”며 위험을 드러내면 불리하고 감추면 유리한 지금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시는 기업을 심판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예방을 위해 정보를 모으는 제도가 되어야 하며, 위험을 솔직히 드러내는 쪽의 부담은 낮추고 형식적으로 작성하는 쪽의 부담은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는 법률과 감독, 처벌 강화만으로는 산업재해를 실질적으로 줄이는 데 한계가 있으며 국가와 기업, 노동자, 시장이 함께 움직이는 예방 중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안전보건공단 예산에서 연구개발 비중이 0.22%에 불과하다는 수치는, 사고가 난 뒤 책임을 묻는 데 그쳐온 그간의 정책 관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지표로도 읽힌다. 이날 제시된 정책과제로는 산업안전 R&D 투자 확대, 안전보건공시제의 안정적 정착과 실효성 확보, 노동자 참여형 위험성평가 강화, 중소·영세사업장 지원체계 확충, 안전보건 성과와 금융·공공입찰·ESG 평가의 연계, 원·하청 및 공급망 전체의 안전보건 책임 강화 등이 꼽혔다.

강충호 ESG코리아정책연구원 원장은 “산업재해를 줄이는 가장 좋은 정책은 사고가 발생한 뒤 책임자를 찾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와 기업, 현장의 예방역량을 높이는 것”이라며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산업안전 R&D 확대와 안전보건공시제의 실효성 있는 정착을 양대 축으로 처벌에서 예방으로, 서류에서 현장으로, 비용에서 투자로 산업안전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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