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47살에 은퇴한 치과의사의 ‘나의 해방일지’
인간극장, 47살에 은퇴한 치과의사의 ‘나의 해방일지’
  • 정세연 기자
  • 승인 2022.11.26 1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극장, 47살에 은퇴한 치과의사의 ‘나의 해방일지’

 

[한국사회복지저널] 저마다 밥벌이에 바쁜 평일 낮, 온 동네를 쓸고 다닐 것 같은 '힙합 바지'를 입고 시내를 어슬렁거리는 한 남자. 심지어 공원 한가운데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망중한을 즐긴다. 은퇴한 지 채 한 달이 안 된 이정혁(47) 씨. 치과의사로 살던 20년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인생의 자유를 선택했다. 누구나 가슴 속에 ‘사직서’ 한 장씩은 품고 산다는데, 그걸 이룰 용기는 어디에서 생겼을까. 부와 명예 대신 진정한 행복을 찾아, ‘이정혁’ 그 자신으로 살겠다는 해방선언. 두 번째 인생은 이전과 어떻게 달라질까?

 

구미에서 유명한 치과 병원장이었던 정혁 씨에게 한계점이 찾아온 건 5년 전이다. 극심한 조울증과 불면증, 술에 의지해야만 잠드는 일이 많아졌고, 심할 때는 응급실까지 들락거렸다. 다양한 취미활동과 제주도에서 석 달간 출퇴근하는 등 갖은 노력을 해봤지만,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점점 무기력해졌다. 결국, 50살이 안 된 나이에 그는 이른 은퇴를 결심했다. 잘 나가던 치과는 3개월 만에 팔아치우고, 치과의사의 상징 ‘핸드피스’를 다시는 잡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했다. 아내와 두 아들의 묵인 아래, 일단 ‘나의 행복’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시작할까, 여러 가지 계획이 많았지만, 정혁 씨가 선택한 건 ‘엄마와 6개월 살기 프로젝트’. 3년 전 황혼이혼을 하고 혼자 생활하던 엄마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때마침, 동생 이정준(45) 씨도 하던 자영업을 접고 엄마에게 와 있었다. 치과의사 아들을 평생의 훈장이라고 여겼던 엄마 박복순(72) 씨는 30년 만의 한집살이가 반갑다가도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마음이 심란한데. 해방에 신난 정혁 씨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살 수 있을까?”일 뿐. 엄마와 함께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실현하기로 했다. 엄마의 세상에는 없던 핑크뮬리를 보러 가기도 하고, 패러글라이딩을 타면서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내기도 한다.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 많아진 정혁 씨와 복순 씨, 수면제 없이 못 자던 두 모자는 이제 저녁만 되면 곯아떨어진다.

 

그렇게 엄마의 곁에서 정혁 씬 오랫동안 묵혀둔 꿈을 하나씩 꺼내 본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살다 죽고 싶다는 마음으로, 은퇴 이후 일상의 이야기들을 인터넷 기사로 연재하고, 결말을 내지 못한 소설도 마무리 짓는다. 불안하고 위험했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시작했던 그림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 시절 이루지 못했던 ‘마지막 로망’을 위해 친한 연극배우의 연습실도 기웃거려 본다. 하루하루 바쁘지만, 오롯이 자신의 행복을 채우는 시간, 덕분에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을 실감하는데. 그런 정혁 씨에겐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남아있다. 정혁 씨가 조기 은퇴하고 공식적인 ‘가출’을 한 후, 아내와의 사이가 조금 냉랭해진 것. 그래서 정혁 씬, 아내에게 그동안 전하지 못한 진심을 편지에 담는다. 정혁 씨는 아내와의 관계를 잘 풀어내고 마지막 관문을 넘을 수 있을까? 이제 막 은퇴한 정혁 씨, 진료실 창문으로만 보던 가을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살고 있다. 그러니 방황마저 즐거워라~ 그렇게 조금씩 비상하기로 했다.

limited933@gmai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